毎日0時に更新されている「一日一文」を8日分まとめた記事です。過去に掲載された文章が読めるよう、2週間限定(2025年4月4日までの公開)で掲載します。
一日一文を使った、いろいろな勉強方法を紹介する記事も併せて読んでください!
記事の目次
광해(2024.8.9 配信分)
음력 7월 1일은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이 승하한 날입니다.
광해군은 정치적으로 훌륭했지만 적이 많았고, 이런저런 오명을 쓰고 쫓겨난 왕입니다.
왕이라는 칭호도 쓰지 못하고 ‘군’으로 격하되었지요.
광해군은 제주도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는데 이 인연으로 제주에서는 해마다 8월에 돌아가신 것을 추념하는 행사를 엽니다.
그리고 그 즈음에는 광해군의 슬픔을 나타내 듯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이를 제주도 사람들은 ‘광해우’라고 부른다네요.
광해군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로는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이 된 남자〉 등이 있습니다.
陰暦7月1日は、朝鮮15代国王光海君が昇遐(亡くなること)した日です。
光海君は政治的に優れていましたが敵が多く、あれこれ汚名を着せられ追い出された王です。
王という称号も使えず、「君」に格下げされました。
光海君は済州島で生涯の最後を送りましたが、その縁で済州では毎年8月に亡くなったことを追悼する行事を開きます。
そしてその頃には光海君の悲しみを表すかのように雨が降るのだそうです。
これを済州島の人々は「光海雨」と呼ぶとのことです。
光海君を描いた映画やドラマとしては、「王になった男(映画、2012年)」「王になった男(ドラマ、2019年)」などがあります。

혼인 날(2024.8.10 配信分)
한국 사극을 보다 보면 신랑신부의 첫날밤을 몰래 엿보는 풍습이 나옵니다.
몰래라고 보기에는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운 데다 창문에 구멍을 뽕뽕 뚫고 들여다보기 때문에 ‘대놓고’ 본다는 표현이 더 맞겠습니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는 신랑신부를 보호하기 위함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악귀’가 왔다가 감히 침입하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서툰 그들을 지도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는 신랑에게 “머리의 족두리를 벗겨!” 등과 같이 알려 주니까요.
韓国の歴史ドラマを見ていると、新郎新婦の初夜をこっそりのぞき見る風習が出てきます。
こっそり、と言うにはざわついていて騒がしい上に窓に穴をぽんぽん開けてのぞき込むので、「堂々と」見るという表現の方が正しいでしょう。
現在の目で見るととんでもないですが、これは新郎新婦を保護するためだそうです。
人々が集まっていれば、「悪霊」が来てもとてもではないが侵入できず、帰っていくということです。
また、不慣れな彼らを指導するためというのもあります。
どうすればいいか分からず途方に暮れる新郎に、「頭の冠を脱がせ!」などのように教えてあげるからです。

선수에게 보내는 갈채(2024.8.11 配信分)
꽤 한참 전, 집 근처에 있는 경기장에서 아시안게임은 폐막하고 장애인아시안 게임이 열렸습니다.
그래도 국제경기이니 관중이 많을 줄 알고 갔는데 웬걸, 하도 사람이 없으니 입장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드문드문 스무 명 남짓한 관객이 있었고, 경기는 휠체어 달리기였습니다.
총소리가 탕! 하고 울린 뒤 선수들은 달렸습니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며 응원했습니다.
손뼉으로 새빨개진 손바닥이 불이 난 듯 얼얼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렬했던지 선수들이 하나 둘 결승선으로 들어와 눈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기분 좋은 응원이었습니다.
だいぶ前に、家の近所にある競技場で、アジア競技大会の閉幕後にアジアパラ競技大会が開かれました。
一応国際競技だし観衆はたくさんいるだろうと思って行ったのですが、なんということ、あまりにも人がいないので入場料も払いませんでした。
ぱらぱらと20人余りの観客がおり、競技は車いす陸上でした。
銃声がパン!と鳴った後、選手たちは走りました。
誰なのかも分かりませんが、私はありったけの力で声を上げて応援しました。
拍手で真っ赤になった手のひらが、火が付いたようにひりひりしていました。
私がどれだけ熱烈だったのか、選手たちが1人2人、決勝戦に残り、目であいさつをしてくれました。
気分の良い応援でした。

포옹(2024.8.12 配信分)
포옹은 고마움, 미안함, 애정, 위로 같은 것을 담습니다.
어린 아기들의 경우도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다가가 안아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조막만 한 손으로 토닥토닥도 합니다.
나는 도쿄 나카노에 살았던 기억이 일생에서 꽤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을 소개해 준 부동산에 고마운 마음이 있었는데, 계약서를 쓰려고 들렀을 때 담당 직원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있었습니다.
나는 중년 여성인 그 직원을 덥석 끌어안고 말했습니다.
“고마웠어요.”
그분 입장에서는 내가 그저 이상한 한국인이었겠지요?
抱擁には、ありがたさ、申し訳なさ、愛情、慰めなどが込められています。
小さい赤ちゃんたちの場合も、母親がつらそうにしているのを見ると近づいて抱き締める姿を目にすることがあります。
そしてその小さな小さな手で、とんとんと、たたいてもくれます。
私は、東京の中野に住んでいた記憶が一生の中でとても良い思い出として残っています。
最後に住んでいた家を紹介してくれた不動産屋に感謝の気持ちがあったのですが、契約書を書こうと立ち寄ったとき、担当者さんの顔に涙の跡がありました。
私は中年女性であるその方をぐっと抱き寄せてしまいました。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その方の立場からは、私はただのおかしな韓国人だったでしょうね。

세계 왼손잡이의 날(2024.8.13 配信分)
왼손잡이의 인권을 생각하는 날이 오늘입니다.
지금은 덜하지만 왼손잡이가 겪는 불편이 꽤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는 오른손과 왼손을 구별하기 위해, ‘오른손=밥 먹는 손’으로 교육했는데, 밥을 왼손으로 먹으면 혼이 났던 시대였지요.
왼손이 편했던 나의 어머니는 칼이나 가위 같은 위험한 물건을 다룰 때는 왼손을 쓰고, 수저질이나 글씨 쓰기 같은 사회적 시선이 있는 일은 오른손으로 합니다.
그것은 어릴 적에 영문도 모르고 부모에게 혼이 나면서 익힌 일입니다.
다수의 막강한 힘에서 밀려난 소수의 설움을 생각합니다.
左利きの人権を考える日が今日です。
今はそれほどでもありませんが、左利きの人が味わう不便がかなりありました。
小学生の頃、学校では右手と左手を区別するために、「右手=ご飯を食べる手」と教育しており、ご飯を左手で食べると怒られた時代でした。
左手が楽だった私の母は、包丁やはさみのような危険な物を扱うときは左手を使い、箸や匙を使うときや字を書くときのような社会的視線のある物事は右手で行います。
それは幼い頃に訳も分からず親に叱られながら身に付けたことです。
多数の強大な力から押しのけられた少数の悲しみを考えます。

호떡 같은 내 얼굴(2024.8.14 配信分)
요즈음의 나는 날이 갈수록 살이 찝니다.
‘복스럽다, 부잣집 맏며느리 상이다’라는 말이 칭찬이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현대인의 살은 무섭습니다.
얼핏 잘 모르겠다가도 여러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어 놓고 보면 아, 이것이 진짜 내 모습인가 보다 하면서 충격을 받습니다.
평소 보정앱으로 셀카만 찍어 현실을 외면했더니 이렇게 맞닥뜨렸을 때 곱절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입니다.
지인에게 내 얼굴이 호떡 같다고 했더니, 부정은 하지 않는 것을 보아 심하긴 심한 모양입니다.
풍만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세상이 다시 왔으면…
最近の私は、日増しに太っていっています。
「幸せそうだ、金持ちの長男の嫁の顔だ」という言葉が褒め言葉だった時期もありましたが、現代人の肉は怖いです。
一見よく分からなくても、何人かと一緒に写真を撮ったものを見ると、ああこれが本当の私の姿なんだなと衝撃を受けます。
普段補正アプリで自撮りばかり撮って現実から目を背けていたら、こうしてぶつかったときに倍のストレスを受けるのです。
知人に私の顔がホットク*みたいだと言ったところ否定はしないのを見るに、ひどいのは確かなようです。
豊満な美しさを追求する世界がまた来てくれたら……。
*小麦粉や餅粉などで作った生地に、黒砂糖とナッツやシナモンなど入った餡を包み、平たく円形に焼いたお菓子

연결(2024.8.15 配信分)
사랑했던 사람의 꿈을 꾸었는데, 깨고 보니, 그 사람의 1주기였습니다.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나는 후회와 그리움에 많이도 울었는데, 꿈에서 본 친구의 모습은 너무나 팽팽하고 아름답고, 명랑한 것입니다.
꿈속에서도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물었습니다.
“나 안 보고 싶었어?”
그랬더니 엉뚱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언니, 우리 식구는 함께야.”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는 그 친구의 남편에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마음 편히 사세요.’
그랬더니 답문이 왔습니다.
‘걱정 안 해요. 우리 식구는 함께예요.’
하늘과 지상이 연결된 듯했습니다.
大好きだった人の夢を見たのですが、目が覚めてみたら、その人の一周忌でした。
その人がこの世を去ってから、私は後悔と恋しさにたくさん泣いたのですが、夢で見たその人の姿はあまりにもぴんとしていて美しく、朗らかなのです。
夢の中でもやるせない気持ちになって、聞きました。
「私には会いたくなかった?」
そう言うと、とんちんかんな答えが返ってきました。
「オンニ、うちの家族は一緒だよ」
気持ちが良かったです。私はその人の夫にメールをしました。
「心配しなくてもよさそうです。心安らかに過ごしてください」
そう言うと、返事が来ました。
「心配してませんよ。うちの家族は一緒です」
空と地上がつながったかのようでした。

음식물 처리기(2024.8.16 配信分)
내가 몹시도 애정하는 가전이 있다면 ‘음식물 처리기’입니다.
일본은 음식물을 타는 쓰레기에 버리지만 한국은 재활용 자원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가공하여 동물 사료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계절에는 별 상관이 없는데, 여름에는 음식물을 모아서 버리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은 음식물을 구워서 가루를 내는 방식의 처리기를 가전으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제 이것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분명 쓰레기인데 다 굽고 나면 냄새도 얼마나 고소한지…
그렇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냥 버리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私が非常に愛してやまない家電があるのですが、それは「生ごみ処理機」です。
日本は生ごみを燃えるごみに捨てますが、韓国はリサイクル資源として処理しなければいけません。
加工して動物の餌にするためです。
他の季節では特に関係がありませんが、夏に生ごみを集めて捨てる面倒臭さは並大抵のものではありません。
ですので、韓国は生ごみを焼いて粉にするタイプの処理機を家電として作り出しました。
私はもうこれがなければ生きていけません。
明らかにごみなのに、全て焼き終わったときの匂いの香ばしさと言ったら。
ですが、あれこれ言ってもそのまま捨てるのが一番楽です。

